노벨상(스웨덴어: Nobelpriset, 노르웨이어: Nobelprisen, 영어: Nobel Prize)
- 다이너마이트의 발명가인 스웨덴의 알프레드 노벨이 1895년 작성한 유언에 따라 매년 인류의 문명 발달에 학문적으로 기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1901년부터 노벨 물리학상, 노벨 화학상, 노벨 생리학·의학상, 노벨 문학상, 노벨 평화상되었다.
다른 상들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수여되는 반면, 노벨 평화상은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수여된다. 각 상은 모두 그 분야에서 매우 권위있게 여겨진다.
1968년, 스웨덴 국립은행은 흔히 노벨 경제학상이라고 불리는 상을 제정했는데, 이 상의 정식명칭은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경제학 분야의 스웨덴 중앙은행상(Sveriges Riksbank Prize in Economic Sciences in Memory of Alfred Nobel)이다. 노벨의 유언에 의해 제정된 나머지 5개 분야에 대한 상의 영문 정식 명칭이 Nobel Prize로 표기되는 것과 달리, 이 상은 스웨덴 중앙은행상이기 때문에 Sveriges Riksbank Prize로 표기된다.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국립은행 경제학상을 만들었다. 이 상은 1969년에 처음 수여되었고 수상자 발표와 시상은 다른 노벨상과 같이 행해진다.
스웨덴 왕립 과학원이 노벨 물리학상, 노벨 화학상 그리고 1968년도에 제정된 노벨 경제학상('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경제학 분야의 스웨덴 중앙은행상'이다)의 수상자를 결정한다. 카롤린스카 의과대학교 노벨총회에서 노벨 생리학·의학상의 수상자를 결정한다.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노벨 문학상을 수여한다. 다른 상들과 달리 노벨 평화상은 스웨덴의 기구가 아닌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에서 수여한다.
노벨상 수상자는 금으로된 메달과 표창장, 그리고 노벨 재단의 당해 수익금에 따라 달라지는 상금을 받는다. 2011년 상금은 스웨덴 크로나로 1천만kr(약 145만$)정도였다. 노벨상은 이미 사망한 사람에게는 수여되지 않지만, 수상자로 정해진 뒤 상을 받기 전에 사망한 사람은 그대로 수상자로 유지된다(유족 대리수상 가능). 4명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공동 수상되지 않는다.
노벨상의 유래
- 노벨상은 스웨덴의 화학자이자 산업가 알프레드 노벨이 남긴 유언에 따라 만들었다. 그는 다이너마이트의 발명가이다. 그는 생전에 몇 번의 유언을 하였지만 마지막 유언은 그가 죽기 바로 전 해인 1895년 11월 27일 파리에 있는 스웨덴인-노르웨이인 클럽에서 쓰였다.
다이너마이트의 군사적 사용의 증가에 그는 심기가 불편했다. 그러던 중 그의 형 루드비히 노벨이 죽었을 때 프랑스의 한 신문에 실수로 알프레드 노벨의 부고기사가 실렸다. 그의 때이른 부고기사에서 알프레드 노벨은 ‘죽음의 상인’이라고 불렸다. 이것이 노벨상을 만든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그의 유산의 94%인 3200만 스웨덴 크로나(340만 유로, 440만 달러)를 노벨상 설립에 남겼다.
노벨상은 1901년부터 수여되었다. 노벨평화상만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수여되며, 나머지 상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수여된다. 경제학상은 1968년부터 스웨덴 국립은행에 의해 제정되었고 나머지 5개 상은 처음부터 있었다.
그가 노벨 평화상을 노르웨이에서 수여하게 한 이유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이웃에서 경쟁과 협조를 해온 미묘한 관계였다.
노벨상 시상 분야 및 결정
- 노벨 평화상 (노르웨이 국회 스토르팅의 추천에 의해 구성되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서 결정)
- 노벨 물리학상 (스웨덴 왕립 고등 과학원에서 결정)
- 노벨 문학상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결정)
- 노벨 화학상 (스웨덴 왕립 고등 과학원에서 결정)
- 노벨 생리학·의학상 (카롤린 의학연구소에서 결정)
- 노벨 경제학상 (스웨덴 왕립 고등 과학원에서 결정, 정식 명칭은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국립은행 경제학상")
- 노벨상은 독창성을 중시한다. 인류에 큰 기여를 한 연구, 발명이 있을 경우 그 아이디어를 맨 처음 만든 사람에게 상을 준다. 즉, 원리를 만든 사람에게 상을 주지 그에 바탕을 둔 생산이나 응용에 큰 기여를 한 사람에게는 주지 않는다는 식이다.
노벨상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그래서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남겼어도 사후 수여는 하지 않는다. 단, 수상자로 지정된 후 사망한 경우에는 수상받을 수 있다. 일례로, 다그 함마르셸드의 경우 1961년에 최초로 사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노벨상을 거부하거나 사퇴한 사람들도 있다. 그 예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소련), 장폴 사르트르 (프랑스), 레득토 (베트남)가 있다.
노벨상 수상자
노벨상 다중 수상자
- 2013년 3월 15일 기준으로 노벨상 다중 수상자 및 단체는 모두 6명이다. 특히, 국제적십자위원회는 박애정신 실천의 공로가 큰 것이 인정되어 적십자 발기인인 장 앙리 뒤낭의 수상까지 포함하여 총 4회를 수상함으로써 역대 최다 수상단체(4관왕)로 등극했다.
국제적십자위원회(4관왕)
- 1901년 평화상 - 장 앙리 뒤낭(적십자 발기인) 박애정신 및 인류평화 기여
- 1917년, 1944년, 1963년 평화상 - 전쟁 및 재해에서 인간을 보호하고 구제하기 위한 활동 전개
노벨상 2관왕
마리 퀴리
- 1903년 물리학상 - 방사선의 연구
- 1911년 화학상 - 라듐과 폴로늄의 발견
라이너스 폴링
- 1954년 화학상 - 화학 결합의 성질에 관한 연구
- 1962년 평화상 - 핵실험 반대 운동
존 바딘
- 1956년 물리학상 - 반도체 연구와 트랜지스터의 발명
- 1972년 물리학상 - 초전도 현상의 연구
프레더릭 생어
- 1958년 화학상 - 인슐린의 구조에 대한 연구
- 1980년 화학상 - 핵산의 염기 서열에 대한 연구
UN 난민고등판무관실
- 1954년 평화상 - 난민들에 대한 정지적 법적 보호
- 1981년 평화상 - 난민들의 이주와 정착 및 처우 개선에 이바지
노벨상 가족
- 노벨상을 가족이 함께 받은 경우도 있다.
- 닐스 보어(아버지, 1922년 물리학상)와 오게 닐스 보어(아들, 1975년 물리학상)
- 윌리엄 헨리 브래그(아버지)와 윌리엄 로런스 브래그(아들), 1915년 물리학상 공동 수상
- 칼 만네 예오리 시그반(아버지, 1924년 물리학상)과 카이 만네 뵈리에 시그반(아들, 1981년 물리학상)
- 한스 폰 오일러켈핀 (아버지, 1929년 화학상)과 울프 폰 오일러(아들, 1970년 생리의학상)
- 칼 퍼디낸드 코리·거티 테리사 코리 부부 (1947년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
- 조지프 존 톰슨 (아버지, 1906년 물리학상)과 조지 패짓 톰슨(아들, 1937년 물리학상)
- 피에르 퀴리·마리 퀴리 부부(1903년 물리학상 공동 수상)와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이렌 졸리오퀴리 부부(딸·사위, 1935년 화학상 공동 수상)
- 얀 틴베르헌(형, 1969년 경제학상), 니콜라스 틴베르헌(동생, 1973년 생리학·의학상)
- 아서 콘버그(아버지, 1959년 생리의학상), 로저 콘버그(아들, 2006년 화학상)
최연소 수상자와 최고령 수상자
- 1915년, 물리학상 수상자 윌리엄 로런스 브래그(당시 25세, 아버지 윌리엄 헨리 브래그와 공동 수상)로 기록되었으나 2014년, 평화상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역대 최연소 수상자(당시 17세)로 등극하여 99년 만에 기록이 깨졌다. 최고령 수상자는 2007년, 경제학상 수상자 레오니트 후르비치(당시 90세), 그 다음 고령자는 2008년, 물리학상 수상자 난부 요이치로(당시 88세)다.
수상 거부
- 장 폴 사르트르는 1964년 문학상을, 레득토는 1973년 평화상을 거절했다. 나치 독일 치하의 있던 리하르트 쿤, 아돌프 부테난트, 게르하르트 도마크는 나치 정권의 방해로 2차 대전이 끝난 후에서야 비로소 노벨상과 상금을 받았다. 1958년, 소련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정부의 압력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을 거부했다. 스웨덴 아카데미는 그의 수상 거부를 인정하지 않고 그 해의 수상식을 보류하였으나 1989년 파스테르나크의 아들이 그를 대신하여 노벨상을 대리 수령했다.
노벨문학상 최대 오점
-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영국의 수상 처칠에게는 2차 세계대전 종전의 공로로 평화상이 검토되었으나 유럽의 일부 국가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그가 집필한 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문학상을 준 것이다. 전 세계 모든 도서관에 자신의 이름으로된 불멸의 작품을 남기고도 후보에 오르지 못한 대가들이 줄지어 있는 형편에 정치가의 회고록이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노벨상 100여년의 최대 오점이다.
<출처:위키백과>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로버섯 땅속의 다이아몬드 (0) | 2018.10.16 |
---|---|
세종대왕 한글 (훈민정음) 만든 이유 (0) | 2018.10.08 |
허경영 역대 대선 공약 (0) | 2018.10.06 |
하인리히의 법칙 (0) | 2018.10.02 |
배스가 들어온 배경 (0) | 2018.08.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