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제2차 걸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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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제2차 걸프 전쟁

by Bell.. 2020.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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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또는 제2차 걸프 전쟁 또는 이라크 자유 작전(영어: Operation lraq Freedom)은 2003년 3월 20일 미국의 이라크 침략으로 시작되어, 2011년 12월 15일 종전되었다. 그리고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하자마자 이라크는 내란에 휩싸였다.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제1441호에 의해 이라크를 사찰했으나 전면적인 협력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미국이, 군사 제재를 위해서는 새로운 결의가 필요하다는 프랑스와 독일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전쟁을 감행했다.

침공의 근거
이라크는 과거 대량 살상 무기의 보유를 밝힌 바 있고, 여전히 그 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서 세계의 안보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독재자 사담 후세인은 국내에서 쿠르드인을 탄압하는 등 많은 압정을 실시하고 있다.

거듭되는 유엔 사찰의 방해 때문에, 대량 살상 무기의 폐기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거듭되는 사찰 방해 때문에, 걸프 전쟁의 정전 결의인 유엔 안보리 결의 687이 찢어지고 있다.

유엔 안보리 결의 1154와 "앞으로의 어떠한 안보리 결의 위반도, 이라크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결과를 부른다."라고 하는, 걸프 전쟁 정전 협정(위의 687) 파기 조건의 결의, 즉 마지막 경고 결의가 진행 중이었다.

대체로 위와 같은 까닭으로 이라크를 중동의 위협이라고 단정하고, 이라크의 무장 해제를 목적으로 한 무력행사라고 주장하여, 이라크를 침공했다. 프랑스, 덴마크, 독일, 뉴질랜드, 러시아, 스페인 등은 전쟁을 시작한다면 1441 이외로 새로운 안보리 결의를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미국과 영국 및 동맹국은 그러한 필요가 없음을 밝히고 위의 까닭에만 기초를 두어 전쟁을 단행했다.

또, 미국과 영국 측이 승전을 선포한 뒤의 2004년 10월, 미국이 파견한 조사단이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마지막 보고를 제출하였다. 전쟁을 시작한 근거가 된 대량 살상 무기의 정보의 신빙성도 희박한 것이었던 것이 밝혀져 이 전쟁의 정당성이 크게 흔들리는 결과를 낳았다.

전쟁 결과
2006년 결국 후세인의 두 아들인 우다이 후세인과 쿠사이 후세인이 열화 우라늄 탄에 맞아 숨을 거두고 이후 후세인은 미군의 체포로 인하여 종전되었다. 미군은 후세인 독재 세력의 지지 기반을 와해시킴으로써 그동안 유지되던 이라크 내 치안이 와해되었으며 이로 인해 보복 살해 등 종파 분쟁이 발생하고 치안 부재로 인한 무장 세력의 형성과 이들의 저항으로 미군 수천 명이 전사하는 결과를 낳았다. 뒤늦게 부족한 지상군을 증원하고 이라크 경찰과 군을 재건하여 미군 전사자 수가 크게 줄고 안정을 되찾아 갔으나 미군이 철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7년이 지난 2010년 8월 20일. 모든 전투 병력을 철수시키기 시작, 2011년 12월 15일 미국에서 공식으로 종전을 선언하였으며 같은 해 12월 18일 미군은 이라크에서 완전히 철수하였다.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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